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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글] 예술공간 광명시작 | 시작예술인 지원 선정작가 작품전 <광명.시.데뷔.전> | 정혜정 개인전 - <비로소 소금밭 위에>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4.04.18   조회수 : 16

 

마른 바다 위, 무유의 물고기

 - 정혜정 비로소 소금밭 위에(광명문화재단예술공간 광명시작’, 2024) 전시 비평

 

 

바닷물이 마르고 난 곳에는 소금 알갱이가 남는다. 이 소금을 깔고 누운 것은 다름 아닌 마른 물고기다. 수중 생물에게 건조는 곧 죽음이다. 이때 비명은 들리지 않는다. 말라있는 상태가 비명을 대신한다. 마치 화장(火葬)이라도 마친 듯, 숱한 수중 생물의 죽음을 눈앞으로 불러오는 듯하다. 이들이 누운 곳은 바다 속도, 모래밭도, 하천도 아닌 소금밭이다. 소금과 염화칼슘이 혼합된 두툼한 바닥을 깔고 누운 도자 물고기들은 숨 쉴 수 없지만 저마다의 아가미를 지니고 있다.

광명시 데뷔전정혜정 비로소 소금밭 위에는 가마에서 1250˚로 건조된 정혜정의 3년간의 도자 작업을 펼친 첫 개인전이다. 대표 연작 나는 전설이다들리지 않는 비명등을 포함한 작업이 공간 바닥에 깔린 소금밭 위에 놓이고, 흰벽에는 시편(試片)으로 제작한 상어 이빨, 아름다움 속 숨겨진 진실이 유일하게 유약을 사용한 작업으로 걸렸으며, 공간의 가운데에는 흰색의 뼈 같은 살갓을 한 상어 작업 나는 전설이다 II가 설치되었다. 기존에 수중 생물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관찰하고 그 생물들의 삶의 환경을 유심히 봐두었던 것으로부터 반자동적으로 물고기 형상이 만들어진다.

 


 

정혜정이 만든 도자-물고기는 물고기로서의 형상은 유지하고 있으나 표면의 물기라든지 비늘의 반짝거림 대신, 기능이 없지만 굉장히 사실적인 아가미를 지니고 있다. 정혜정은 도자용 흙을 이용해 어류를 조형할 때, 어떤 것도 보지 않고 각 작업의 아가미를 파내고, 그린다. 아가미뿐만 아니라 이 작업 전체가 눈앞의 수중 생물 이미지를 참조하거나 모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작가 정혜정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하여 제작된 것이다. 그의 손을 통해 조형토, 분청토 등의 흙이 큰 덩어리에서 떼어지고, 손에 담긴 흙의 질량에 따라 어느 정도의 길이, 무게를 지닌 물고기가 된다. 의도적이면서도 우연적으로 어느 어류의 형상을 하게 된 흙덩이-물고기는 내부에 뼈나 장기 대신 세류(世流)의 기록물인 신문지로 채워져 있고, 정혜정의 무수한 손길을 통해서 아가미와 지느러미 등의 세부적인 표현을 통해 물고기 형태를 띠게 된다. 이 흙덩이-물고기는 가마에 들어가 그것이 지닌 수분을 증발시킨 만큼 작아지고, 몸속을 채우던 신문지를 태워버린 만큼 가벼워진다. 정혜정은 이내 다 말라 도자-물고기가 된 작업에 유약 대신 무유(無釉), 즉 환경에 덜 해가되는 방식으로 도자-물고기의 표면 처리를 마감한다. 재가 된 신문이 유약 대신 물고기의 색을 입히는 데 쓰이기도 한다.

 


2020년 여름, 정혜정은 산책을 하던 중 광명의 목감천의 물이 불어나 하천에 살던 물고기들이 바깥으로 튕겨져 나와 있던 것을 보고 놀란 것을 계기로 수중 생물에 대한 활동과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가 놀란 것은 단순히 물고기가 하천 바깥에 놓여 거칠게 호흡하고 있던 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이 낚시 미끼로 사용하기 위해서 범람 천에 나뒹구는 물고기를 줍는 모습을 보고, 수중 생물에 대한 사뭇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었다. 위기에 처한 생물을 구해주는 것이 아니라, 쉽게 획득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정혜정은 서해안 수중 환경에 대한 자원봉사를 하는 등, 단순히 작가로서 조형 작업의 영역 너머에서 수중 환경과 생물에 대한 활동을 실천적으로 이어나가고 있다. 이러한 활동과 함께 정혜정의 수중 생물 중심의 도자 작업도 3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정혜정의 도자 작업은 시각예술의 특정 세부 장르에 포함되기보다는 도자와 동시대 설치미술 모두에 관련된 채로 생산되고 있다. 그의 작업이 도자 공예의 특성을 지니면서도, 공예품으로서 기능성이나 조형적 완성도를 작업의 중심에 두기보다는 수중 환경에 대한 관심과 이 환경에서 살아가는 수중 생물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실천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자신 스스로 형성한 문제의식과 감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정혜정은 수중 생태에 가장 위배되지 않는 조형 방법을 개발하면서 실현하고 이를 토대로 타인들의 관심을 이끌어낸다. 따라서 정혜정의 첫 전시는 마르고 굳어버린 물고기를, 또는 언제라도 다시 살아날지 모르는 수중 생물을 함께 바라보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제스처가 전시의 중심이 된다. 작가의 의도대로 사람들은 지나가다 소금밭에 놓여 있거나, 철봉에 지지한 채로 공기를 가르고 있는 물고기의 형상에 이끌려 들어왔다. 마른 바다 위를 누비는 도자 물고기를 보면서 각자 이 생명에 대해 감각해볼 때, 그녀가 직접적으로 의도하지는 않더라도 작업에 살포시 깔아놓은 메시지가 작동하는 순간이 아닐까?

 

 

 

 

바다 청소 활동가이자 작가 정혜정의 작업과 전시는 환경 보호 운동이 아닌 채로 수중 환경 보호에 기여할지도 모른다. 바다에 찾아가 무수한 물고기를 만나는 것, 전시를 열고 무수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이 두 개의 수행 사이에서 예술가로서 발을 디디며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정혜정은 작업과 활동은 서로 영향 받는 예술적 실천들 단단해지며 또 다른 걸음들과 이어질 것이다. 이 과정에는 이번 전시의 제목이 된 편지를 작성한 작가 어머니와의 협업도 담길 것이라고. 생명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여기서 저기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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