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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글] 예술공간 광명시작 | 시작예술인 지원 선정작가 작품전 <광명.시.데뷔.전>|최선주-<안녕 광명동 우리집>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4.05.03   조회수 : 9

 

 

작은서사들의지도그리기

 

김미교(국민대미술이론전공박사, 독립큐레이터)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거시적으로 공동체 및 지자체의 정책적 방향부터 그 구성원인 시민들 살아가는 일상까지 다양한 요소들에 영향을 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광명시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끊임없이 그 도시풍경을 바꾸고 있다. 재개발정비사업은 특히 그 변화의 속도를 가속화시키는 이슈 중 하나일 것이다. 따우-뚜라는 활동명으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는 최선주 작가에게 이미지는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소통의 창구이다. 광명시데뷔전의 마지막 전시 《안녕 광명동 우리집》에서 그녀는 광명시 주민이자, 창작자로서 자신을 둘러싼 직접적인 세계이자 삶의 장소 그리고 관찰의 대상이기도 한 광명시의 모습들과 면면히 드러낸다.

 

 

 

 최선주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주요한 기법으로 사용한 시아노타입(Cyanotype)은 우유 팩, 종이상자와 같이 쉽게 구하고 버릴 수 있는 폐지들을 활용했다. 판화 기법 중에서는 판형을 만드는 과정이 간편해 상대적으로 인스턴트 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이 기법의 또 다른 이름은 블루 프린트라고 불리는 청사진이다. 전통적으로 건축에서 설계도를 복사할 때 많이 사용한 이 방식은 관용구 적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건축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림으로 여겨지며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계획이나 구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는 광명시의 오래된 주택 그리고 간판의 이미지를 화면 위에 재조합하고 있다. 시아노타입이지만 푸른색뿐만 아니라 다채롭고 노란색 등 발랄한 다른 색채를 함께 사용해 발랄하고 도회적인 분위기, 시티 팝(City-Pop)적인 이미지를 구성했다. 최선주 작가는 작품의 컬러에 대한 질문에 자칫 초라하고 외면받을 수 있는 풍경에 생기를 더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오래된 사라질 것들로 그리는 청사진은 마치 오래된 미래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연상케 한다.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들은 다양한 국적과 직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연립주택, 자신만의 디자인적 개성을 주장하는 옛 간판들을 해체하고 재조합해 만들어낸 풍경은 그에 얽힌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우리집 가는 길〉(2023) 같은 경우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 그녀가 집에 가는 길에 주요한 지리적 지표로 작용하는 다세대 주택 혹은 연립주택의 건물과 간판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재조합 한 작품이다. 이 지리적 지표들은 집에 가는 길에 발견한 지극히 개인적인 포착들이다. 이는 심리지리(pychogéographie)의 방식을 연상케 한다.

 


1950-70년대 유럽에서 전개된 국제상황주의(Internationale Situationnist)는 무분별한 도시개발이야말로 현대사회와 정치의 위기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며, 기존 체제의 도시계획을 반대했다. 국제상황주의자들은 시민이 소외되며 즐거움을 잃어가는 권태로운 ‘장소’들을 살만한 공간으로 회복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들이 관념적으로 제시할 ‘통합적인 도시계획(urbanisme unitaire)’을 위해 새로운 ‘지도만들기’(혹은 파괴하기)의 작업을 통해 우리의 환경에 살고 있는 개개인의 심리, 순수한 감정과 그것으로 드러나는 의식적, 무의식적인 생각들로만 도시적 지리를 재구축하고자 했다. 이처럼 우리의 심리적, 행위적, 사회적 공간들을 관념적으로 표류(dérive)하는 것들을 하나의 화면에 담아낸 것이 심리지리이다.

 

 


  최선주 작가가 재조합한 광명시의 심리지리적 이미지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의미는 기억이다. 이미지화하는 과정을 통해 사라질 도시의 이미지를 한 번 더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은 살아있듯 변화하는 광명시에 대한, 마치 또 하나의 기념비처럼 작동한다. 작가가 선정한 건축과 간판들을 직접 본 적 있는 관객도 혹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관객도 그녀의 작품을 통해 어딘가 있을 광명시의 풍경들을 상상하게 한다. 특히, 자전적이고 개인적인 표현과 기록들은 오늘날 광명시의 역-기념비(Counter-monument)로써 광명시의 삶에 대한 서브텍스트들을 매개하는 아이콘이 된다.

 

 

 

 

 제임스 영(미국 James E. Young, 1951- )에 따르면 20세기 이후 현대미술에서는 기념비를 ‘역(逆)-기념비’라는 용어로 새롭게 규정하고자 시도한다. 서구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주류 역사의 기록으로써 강조되어 오던 기념비의 의미와 형식은 근현대를 거치며 급격한 변화의 양상을 보인다. 기념비에 대한 사고의 전환은 많은 철학자들이 “기념비 자체보다는 우리의 시대적 본질”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기념비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변모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처럼 기억과 기념비의 개념은 점차 ‘절대성, 공공성’은 ‘다변성, 개인성’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대기업 빌라〉(2023)를 비롯한 《안녕 광명동 우리집》의 광명시 풍경들에서 대기업 이름을 딴 빌라뿐만 아니라 좋은 의미를 담은 단어들을 조합한 빌라들까지 다양한 간판들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최선주 작가의 시선을 따라 각 집-건축들이 처음 만들어진 당시에 광명시민들이 품어온 다양한 소망을 찾아보는 것도 관람의 흥미로운 요소들이다.

 

 

 

 

이미지로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최선주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판화 작품 시리즈뿐만 아니라 디자인, 일러스트 그리고 동화까지 다양한 결과물로 이미지를 활용해 다른 사람들에게 메시지들 전한다. 직접적인 대화나 글과는 또 다른 이미지의 소통, 자전적이지만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작은 서사들, 이를 자신만의 이미지로 재조합하는 심리지리적 접근은 앞으로 최선주 작가의 활동에서 주요한 특성이자 강점이 될 것이다. 2023년 광명시데뷔전을 통해 광명시의 작가를 재발견하는 여정의 마지막 작가인 그녀가 앞으로 또 새로운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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