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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글] 예술공간 광명시작 | 시작예술인 지원 선정작가 작품전 <광명.시.데뷔.전> | 엣찌(정하은) 개인전 - <사랑할 결심>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4.03.29   조회수 : 20

 

내가 나의 구원이 될 때까지

 

허영균(공연예술출판사 1도씨 대표)

 

*엣찌(정하은)개인전 - <사랑할 결심>

-2023.12.20-12.31 

 

 

어스름한 저녁 테이블 위해 밝혀져 있는 촛불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실내 공기에 따라 이리 저리 흔들리면서도 심지를 단단하게 세우고 있다. 문이 열리거나 갑작스럽게 누군가 지나간다던가 할 때, 불꽃은 휘어지고 간혹 꺼질 것처럼 위태로웠다가도 잠시 뒤에는 다시 처음과 같은 모습이다. 잘 녹은 촛농이 촛대를 타고 부드럽게 흐른다.

 

 

 

 

정하은 개인전 <사랑할 결심>, 꼭 타오르는 초 같다. 제 몸이 끝날 때까지 타오르기를 계속하는 것, 기어코 흘러내리는 것, 빛이 멎지 않는 것. 그건 사랑의 특성이기도 할까. 드로잉을 중심으로, 오브제 작업과 책, 설치물로 구성된 전시는 얼굴이 넘친다. 종종 웃지만, 주로 우는 얼굴이다. 얼굴에서 촛농 같은 굵고 녹진한 눈물이 흘러 턱 끝에 매달려 있다. 그 얼굴들은 정하은 자신의 것이다. 10대 시절부터, 대학생 시기, 졸업 이후의 자신의 모습을 작품에 담고 있다. 자화상들은 자기표현이나 자기증명이라기 보다 거울 속 자신을 향한 응원처럼 보인다. 작가는 자신을 지켜본다. 지켜보는 것은 무언가를 보호하는 일이고, 응원하는 일이다. 정하은의 작품에는 작가 자신과, 그 자신을 바라보는 작가가 함께 있다. 꺼지지 않은 응시는 자신을 놓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정하은의 작품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그간 작가가 부딪히고 절망해온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일부 작업들은 신체를 통과한 거대한 고통의 형체를 보여준다. 웅크린 몸 위로 갯벌의 진흙처럼 두터운 고통이 흘러내린다. 사람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두터워져 있다. 빛도 공기도 들어올 틈이 없어 보인다. 작품 <사랑할 결심>에는 암흑 속으로 점차 꺼져가는 하은이가 그려진다. 하은이는 타인들의 손을 잡고자 고군분투하지만, 관계 맺기를 위한 노력에 전부 실패하고 어둠 속에 잠식된다. 그렇게 묻혀버린 하은을 누군가 발견하고 파헤쳐 꺼낸다. 이윽고 하은이가 덮어쓴 진흙이 씻겨 내려간다.

 

주먹을 펴고 흘러가게 내버려두자. 이를 악물고 모래 한 알까지 아까워했던 나를 다독여주자. 이제 그만 모래를 바람과 물에 흘려 제 갈 길을 가도록 놓아주자  (작품 중의 글)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언제나 너를 사랑할게, 너를 사랑하지 않을 때는,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노력할게이 불가역적인 사랑의 다짐을 작가는 스스로에게 지켜냈다. 앞으로도 그러겠노라는 선언이 전시 <사랑할 결심>의 결말이다. 결심만으로도 사랑은 무엇인가를 구해낸다. 타오르는, 흔들리는, 꺼졌다가 다시 불을 밝히는 누군가를, 지켜보겠다는 심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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